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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목사] 창조주와 구원의 주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12.09 09:51

   
▲ 하 태 영 목사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a)라고 한다. 믿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게 한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믿음론을 따라가다 보면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의 피)”라고 하는 구속론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히 12:24). 히브리서의 믿음론은 창조론과 구속론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조주이기만 하다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외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게 된다.

창조신 개념은 고대 근동의 여러 신들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이 창조신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자기 존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창조신에 의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체는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명체는 도태된다. 다윈의 진화론은 창조론과 대립하는 것 같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옳고 그름은 상관할 것 없이 살아남는 것, 번영하는 것, 성장하는 것, 이기는 것, 이익을 남기는 것만이 승자의 길이다.

이런 창조신들의 세계 인식은 뒤틀린 역사에 대한 자성이 없다.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억울한 자의 탄식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히브리서가 창조주 하나님만을 말하지 않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이기도 하지만, 죄악의 역사를 속량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생존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실패한 사람들, 강자의 억압과 폭력에 짓밟힌 사람들, 세계화의 무대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동료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창조론이 아니라 구속론이다.

우리의 삶은 앞을 향해 진보해야 한다. 나라도 진보해야 한다. 역사도 진보해야 한다. 급속히 변하는 세계 현실 가운데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뒤틀린 역사를 재생산하고, 동료 인간을 뒤 처지게 한다. 억울한 자를 더욱 억울하게 한다. 그들이 뒤처진 자로 남아 있는 한 역사의 진보는 의미가 없다. 그들은 반듯이 위로 받아야 하고, 상처는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 진보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서 마땅히 위로 받고, 회복되어야 할 사람들을 외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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